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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보(朝報)는 세계 최초의 신문인가?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1. 1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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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보(朝報). 승정원(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기관. 오늘날의 대통령비서실+행정안전부의 일부)에서 발행하던 관보 매체. 신라시대부터 그 기원이 내려온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중국에도 유사한 관보 형식의 간행물이 있었다고 한다. 조보는 정부의 공보매체 내지 관보로서 봉건통치의 보조적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담당했다. 정부의 결정 및 지시와 공지사항들을 전달하는 행정수단으로써의 기능과 함께 정치제도 및 사회질서의 유지, 강화를 위한 사상적 지주로 내세웠던 윤리관, 사회관, 세계관 등 유교적 사상을 전파하고 선전, 침투시키는 사상적 기능도 담당했다. 그래서 조정의 소식보다는 관민의 사상과 여론의 계도를 위한 내용들, 그리고 유교사상이 더 많았다. 그밖에 오늘날의 신문 사회면에 해당하는 천재지변과 기문기사에 관한 소식이 실리기도 하였고, 농사에 대한 내용들도 게재되었다.

    발행은 승정원에서 맡았는데 국가통치상 필요한 사건들에 대한 소식을 취사선택하여 그 자료들을 산하기관인 조보소에 내려보내면 조보소에서 이들을 발표했다. 발표된 소식은 각 관청이나 기관으로부터 파견된 서리들이 필사하여 각자의 기관으로 발송하였는데 이것을 조보라고 했다. 사람이 필사함에 따라 내용과 체제가 동일하지 않아 단계를 지날수록 내용과 체재가 다소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발행지의 크기는 일정치 않았는데 제호나 기사의 제목도 없었으며 다만 발행일자만이 매호의 첫머리에 적혀있었다.

    사용된 언어는 주로 한문과 이두였다. 당시 조선의 기술력으로는 충분히 인쇄가 가능했고, 인쇄하자는 신하들의 건의가 여러번 있었으나 왕이 묵살한 것으로 보아 그 배포 범위를 제한, 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필사를 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왕은 조보의 내용까지 엄격하게 통제하였으며, 원칙적으로는 삼정승과 판서, 한성부윤 및 기타 중앙관의 서장, 지방 절도사나 병마절도사 등 전현직 고급관리들에게만 배포하도록 하였으나, 비공식적으로 일부 사대부들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조때 민간인들이 생계의 밑천으로 삼고자 의정부와 사헌부의 허가를 얻어 민간 조보를 인쇄하여 발행했는데 몇달 후 이 신문을 우연히 본 선조가 '국가기밀을 누설할 가능성이 있다'며 폐간시키고 관련자들을 모두 유배시킨 적도 있었다. 조선 말기에는 일반 양반계급도 돈을 주고 조보를 제작, 배포하는 관리들에게서 조보를 입수해 읽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김영주 경남대 명예교수가 2023년 열린 언론정보학회 심포지엄에서 선조 때 몇 달 동안 발행된 민간 조보를 "영리를 목적으로 민간인이 발행하고, 활판 인쇄술을 세계 최초로 활용해 발행했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의 '활판인쇄 상업 일간신문'으로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문이 가져야 할 대중성, 정기성, 범용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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