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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대전 이후 미술 사조의 변화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2. 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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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 전후 미술 사조를 비교한 재미있는 이미지. 물론 사실은 아니고 웃자고 한 얘기이다.

     

    2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1차 대전의 사망자 수는 2,500만 명에 부상자는 2,1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 이전에 가장 사망자가 많았던 전쟁이 30년 전쟁으로 7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엄청난 인명 피해라고 할 수 있다. 2차 대전은 그보다 참혹해서 추산으로 7,300만 명이 사망되었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인의 피해는 더 심했으며 2번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문명 파괴, 기타 유무형의 피해는 가히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2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정신 역시 큰 혼란에 빠졌다. 오랜 기간 서구사회를 지켜 왔던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채 날아갔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더 이상 이성을 믿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한쪽에선 그래도 이성을 찾아야만 이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미술 역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미술가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혼란을 이해하고 그것을 작품에 투영하고자 노력했다.

    1차 대전 시기에 발생한 대표적인 미술사조는 다다이즘이었다. 이들은 허무적 이상주의와 반항 정신을 기초로 하여 당시의 문화적, 관습적, 교육적 가치를 거부했다. 이들은 예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했다.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아 파리에선 앙드레 브르통과 살바도르 달리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가 일어난다. 이들은 기존의 예술 형식 파괴의 기틀 위에서 비합리적인 잠재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꾀했다.

     

    1차 대전 패전 이후 패전국으로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독일을 중심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보지 않고 선이나 형태, 색채 등을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왜곡시키고 무시하는 표현주의가 퍼졌다. 고흐와 고갱, 뭉크로부터 시작된 표현주의는 나치에 의해 탄압될 때까지 미술은 물론 영화와 음악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소련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선보이는가 하면 모든 것이 나치의 기준에 맞느냐만이 유일한 기준이었던 퇴폐미술 등 정치적 목적이 예술에 영향을 끼치는 시기도 있었다.

    2차 대전 후에 서구 모더니즘의 이성중심주의에 반하는 철학 사조인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했다. 탈근대주의로도 불리는 이 운동은 사회, 철학, 문화, 예술 등 각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의 시대에 반기를 들고 탈이성적이고 탈중심적인 다원적 사고를 주장한다. 근대적 권위에서 탈피하고 개성을 인정하고 자율적이며 다양함을 가치로 삼았다.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일각에서는 몽매주의를 부추기는 무의미한 사상이며, 실증적인 지식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예술에도 큰 영향을 주어 전위예술인 플럭서스와 로이 릭턴스타인과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 60년대 일어나 추상표현주의를 비판하며 생겨나 건축에도 큰 영향을 끼친 미니멀리즘,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나 아이디어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개념미술 등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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