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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유바 술레이만 디알로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5. 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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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유바 술레이만 디알로(Ayuba Suleiman Diallo, 1701~1773) 세네갈의 부유한 성직자 집안 출신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흑인이었다. 1730년 노예 매매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붙잡혀 노예가 되었다. 팔려가는 동안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며 그의 아버지가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으나 편지가 오는 시간이 늦어 미국 메릴랜드로 팔려갔다. 그를 산 사람은 메릴랜드 켄트 섬의 톨시라는 사람이었는데 아유바는 처음에는 담배밭에서 일하다가 그러한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소를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그는 쿠란을 필사하고 하루 5번의 기도시간을 갖는 등 자신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지켰다. 이후 그가 아프리카의 귀족혈통을 갖게 된 사실이 알려지고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의 이사인 제임스 오글소프가 £45에 구입했다.

    오글소프는 아유바의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를 구입하여 런던에 있는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 사무실로 보냈다. 여행 중에 아유바는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3년간의 고생 끝에 런던에 오게 된 그는 독실한 신앙심과 높은 교육 수준 덕분에 상류층과 교류하며 궁정에 소개되었으며 결국 공개 모금을 통해서 1734년 노예 신분을 벗어나게 된다. 아유바는 의사이자 박물학자, 수집가였던 한스 슬론 경(71,000점의 유물을 영국 국가에 기증하여 대영 박물관, 대영 도서관, 자연사 박물관의 기초를 마련한 사람이다.)의 밑에서 아랍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으며 대영박물관에서 아랍어 원고 컬렉션을 만드는 일도 했다. 그의 지인과 친구들은 그를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는 꾸란을 세 번이나 필사하고 지인들과의 종교 토론을 통해 이슬람 신앙을 지켰다.

    이듬해에 감비아를 경유해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고국이 전쟁으로 황폐화되었으며 그의 아버지가 사망했고 그의 아내 중 한명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해서 재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부를 이용해 옛날 생활을 찾을 수 있었으며 자신이 겪은 일을 책으로 펴냈다. 그의 회고록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출판되었다. 이후 그는 영국과 적대관계인 프랑스군에 의해 1년여간 투옥되는 등의 고초도 겪기도 하였으나 1773년 사망했다. 디알로는 영국 사회가 서아프리카 문화와 정체성, 이슬람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의 초상화는 1733년 윌리엄 호어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초상화는 2009년 카타르 박물관에 의해 구입되었는데,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그림의 역사적 상징성 때문에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해 모금 운동을 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소유권은 카타르 박물관이 가지되 영국에 빌려주는 식으로 합의되었다. 자유를 얻은 노예를 처음으로 화폭에 담은 작품으로 아프리카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예우한 최초의 유화이다. 디알로가 입은 옷과 목에 건 붉은색의 코란은 서아프리카 사람이자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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