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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퀴리 부인의 장녀 이렌 졸리오퀴리와 남편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7. 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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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리 부인의 장녀 이렌 졸리오퀴리는 어려서부터 진지하고 침착한 성격이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고 한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말상대 겸 공동연구자가 되어 아버지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17살의 이렌은 소르본느 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어머니를 돕기 위해 간호과정을 수강했다. 마리와 이렌 모녀는 X선 장비를 장착한 개조한 트럭을 몰고 전장으로 가서 부상병을 진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소르본느 대학에 돌아가 수학과 물리로 학위를 취득했고 파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퀴리 연구소에서 일하던 프레데리크 졸리오와 결혼했는데 어머니가 프레데리크에게 방사선 화학 연구에 필요한 정확한 실험 기술을 가르쳐 주라는 지시를 받아 가르치다가 사랑이 싹텄다고 한다. 프레데리크 졸리오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퀴리라는 성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자신의 성 졸리오에 퀴리를 이어 붙이도록 했다.

    이렌과 프레데리크는 '프레데리크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렌에게 구애한 거 아니냐'라는 세간의 의혹에도 불구하고 - 심지어 어머니 마리 퀴리도 프레데리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혼전계약서를 쓸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 오랜 시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부부는 과학에 대한 열정과 스포츠에 대한 사랑, 정치적 견해 등이 매우 비슷했다고 하며 스페인 내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파시즘과 나치에 맞서 싸웠다. 여담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그녀와 남편은 퀴리 연구소에 남아서 연구를 계속했다. 이 연구소에는 나치 관계자들도 드나들었지만 연구소 지하에 레지스탕스의 무기고가 있다는 사실은 종전 때까지 몰랐다고 한다. 또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다.

    이렌과 프레데리크는 1934년 알루미늄의 천연 안정 동위원소에 알파 입자(헬륨 핵)을 쏘아 불안정한 동위원소를 바꾸었다. 부모님은 자연에서 발생한 방사성 원소를 불리한 데 이어 딸은 방사성 물질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방사성 물질의 응용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을 빠르고 저렴하고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이다. 이 공로로 193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최초의 모녀 노벨상 수상 사례라고 한다. 또한 어머니의 후임으로 파리 대학 교수에 취임했으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48년 최초의 프랑스 원자로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이렌 역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기 위해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여성차별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말년엔 수년 동안 방사성 물질과 밀접하게 작업했기 때문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946년엔 봉인된 원소 캡슐이 폭파해 폴로늄에 노출되는 방사능 피폭을 당하기도 했다. 이렌은 1934년 백혈병으로 1956년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프레데리크도 2년 뒤 방사선에 의한 간 손상으로 58세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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