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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냥팔이 소녀'에 드러나는 19세기 아이들의 참혹한 노동현실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9. 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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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19세기 급격한 산업혁명 속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다 버려진 어린 노동자들의 아픔이 녹아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라는 사이트의 ‘아동착취’ 자료실에 따르면 당시 4~16세 소녀들은 성냥공장에서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12시간 중노동에 시달렸는데 두 번의 짧은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서서 일해야 했다. 화장실도 감독관 허락 없이 갈 수 없었으며, 규칙을 위반하면 벌금을 물거나 매를 맞았는데 벌금이 무거워 하루 일당을 모두 날리고 빈손으로 집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데르센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안데르센 역시 가난한 구두공이던 아버지가 11살에 세상을 떠난 후 어린 시절 공장에서 고생해야 했다.

    또한 성냥팔이 소녀는 당시 성냥공장에서 일하다 산재를 당하고 좇겨난 아이들의 현실이었다. 아이들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공장에서 돈 대신 성냥을 손에 쥐여 내쫓았기 때문이다. 당시 성냥공장에서 어린 소녀들이 주로 처리한 일은 작은 막대기 끝을 유독성 물질인 하얀 색깔의 인 화합물에 담갔다가 빼는 것이었다. 공장 안에는 항상 유독가스가 가득할 수밖에 없는데 환기도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 등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하루 12시간씩 무방비로 유해가스에 노출된 상태로 일을 한 아이들은 참혹한 질병을 얻게 되었다. 백린(白燐)은 뼈에 쉽게 침착되는 성질이 강해 성냥공장에서 오랜 기간 일한 아이들은 아래턱이 고름과 악취를 내며 괴사 하여 주저앉는 ‘인턱’(phossy jaw) 증상을 얻게 된다. 공장 관리인들은 인턱 증상의 전조증세로 얼굴색이 까맣게 변하는 낌새가 보이는 아이가 발견되면 곧바로 해고했다. 흉측한 몰골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다른 공원들이 알지 못하게 산재를 은폐한 것이다.

    결국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인턱 증세가 나타나기 전 해고된 후 목숨값 대신 공장에서 받아온 성냥을 길거리에서 팔다가 얼어 죽은 것이다. 그녀가 동사하지 않았다면 더 비참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영국에서 백린 사용이 금지된 것은 성냥팔이 소녀가 출간된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1888년 한 사회운동가가 비인도적 노동 실태를 폭로하는 기사를 냈다. 해당 기사에 대해 당시 최대 성냥공장이었던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의 지배인이 여공들에게 보도내용을 반박하는 확인서에 서명을 강요하자 1400명의 여공들이 서명을 거부하고 집단 파업에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결국 여공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후 성냥공장들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성냥 제조를 가내수공 형식으로 외주화하면서 피해가 더 커지게 되었다. 집안의 아이들까지 인에 노출되어 잇달아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자 여론이 들끓게 되었고, 1891년 구세군재단에서는 인체 유해성이 적은 ‘적린’(赤燐)을 사용한 성냥공장을 세워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결국 의회는 1908년 백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담으로 2014년 영국 북동부 지역의 퀘이커교도 공동묘지에서는 인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소년 유골이 다수 발견된 바 있다. 해당 지역은 19세기 백린을 사용하여 성냥을 만들던 공장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발굴 작업을 지휘한 영국 더럼대학 인류학과의 샬럿 로버츠 연구팀은 “밀폐된 공간에서 인에 오염된 공기를 장기간 흡입하면 나타날 수 있는 인턱 증상의 전형적인 특징이 유골에서 확인됐다”며 “발굴된 유골 주인들의 나이는 12~14세 사이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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