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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루페인트 (feat. 노홍철)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9. 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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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루페인트. 우리나라의 페인트 제작 업체. 1945년 대한오브세트잉크로 창업했으며 원래는 출판사에 잉크를 납품하던 회사였다. '노루표'란 상표는 1953년 한정대 창업주가 독일 출장 중 한 화랑에서 본 한 쌍의 노루 그림을 보고 '노루처럼 사랑받는 회사로 키우겠다'는 생각에 노루를 상표로 선택했다. 또한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부러 동물을 기업 상표로 삼은 이유도 있었다. 노루표 상표는 1957년 정식으로 상표등록했다. 


    국내 최초로 인쇄잉크를 생산해서 당시 화폐나 교과서의 80%를 점유했다. 이후 잉크 제조업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1963년부터 페인트 사업에 진출하였으며, 이후 70년대 경제개발과 조선업 활황, 신도시 건설과 중동지역 건설붐 등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던 중 IMF에 직격타를 맞아(가장 큰 고객이었던 기아자동차 부도가 결정적이었다) 인원감축을 실시하기도 했으나 회장의 약속대로 경영이 정상화된 후 감죽된 인원들을 복직시킨 일도 있었다. 

    국내 최초로 잉크를 만들었지만 처음엔 국산제품에 대한 불신으로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기술력이 뛰어나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서 서울의 대부분의 인쇄소가 사용할 정도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1947년 국내 최초로 초록색 잉크를 만들어 한국조페공사에 납품하기도 했고, 6.25 때에는 공장 설비를 부산으로 피난시켜 공장을 돌렸다. 

    페인트 사업도 그동안 쌓아올린 기술력으로 순항했는데 1957년에는 국내 최초로 미연방규격 조합페인트를 생산하는 데 성공하여 미 8군에 납품하는 데 성공했으며, 1962년 국내 최초의 고충 아파트인 마포아파트 도료 납품에 성공하면서 품질을 인정받았고, 1968년 도료업계 최초로 KS 표시 허가를 획득했다. 1993년 우리나라 최초의 관측 로켓 과학 1호의 도장을 맡기도 했으며 1994년에는 중국 자금성 보수도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 페인트업계 중 유일하게 합격을 받아 자금성 도장에 사용되었다. 이후 2011년에는 페인트 냄새를 70% 줄인 친환경 페인트 순&수를 만들었고, 전 세계 컬러 표준이 되는 팬톤사와 협력하여 모든 컬러를 친환경적으로 구현하는 팬톤 페인트를 출시하기도 했다.

    한정대 창업주의 집안은 독립운동과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외삼촌인 임국정 의사는 일제의 노선인 독립운동 탄압 자금 15만원 탈취사건의 주역으로(영화 '놈놈놈'의 모티브가 된 사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으며, 친형 한정빈은 함흥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학생회장으로 전교생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쫓기던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정대 창업주는 일본 오사카공고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뒤 후지화학연구소에서 일하다 해방이 되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귀국 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일하던 외사촌형 임병철에게서 나라를 다시 재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문화 교육인데 이를 위해선 출판이 필수적이고, 출판은 잉크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국내에 잉크가 부족해서 부르는 게 값(해방 직후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으나 일본인 기술자들이 원천기술을 알려주지 않은 채 빠져나가 잉크 물량이 태부족한 상태였다고 한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잉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마침 한정대 창업주에게는 일본에서 배워 온 잉크 제작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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