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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당 황대중과 그의 애마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10. 13. 00:10300x250
양건당 황대중(1551~1597). 조선의 의병장. 신체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했다. 조선시대에 드문 장애인 장수이다. 황희 정승의 5대손으로 한성에서 태어났으나 영암군수로 부임하던 할아버지를 따라 강진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학질에 걸려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황대중은 자신의 왼쪽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어머니의 약재로 쓰게 했다고 하며 이후 다리가 불편해져서 절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후 그의 효심을 기려 효건(孝蹇)이라 불렀다. 황대중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의 효심을 기려 조문객이 십리 밖까지 줄을 섰다고 한다. 그의 효심을 들은 선조가 정릉 참봉에 천거하였으나 고사하였다고 한다.
황대중은 절름발이였지만 활쏘기와 무예가 뛰어났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피난길 어가를 호위하는 별초군으로 지원했으며, 이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따라 남하하여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도 6촌 형인 황진과 참전했다. 황진이 죽고 진주성이 함락되자 겨우 탈출해 이순신의 휘하 장수로 활약했다. 한산도 대첩에도 참전했는데 이때 해전 중 총탄을 맞아 나머지 한쪽 다리마저 절게 되었는데 이순신은 "과거의 다리는 '효건(孝蹇)', 지금의 다리는 '충건(孝蹇)'이니 두 다리를 함께 저니 '양건(兩蹇)'이로다."라고 추켜세웠고, 이후 '양건'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였고 황대중은 병마절도사 이복남 필두로 김경로, 신호 등 다른 장수들과 함께 왜군과 맞서 싸웠으나 가슴에 총을 맞고 전사했다. 숨이 멎기 전 주부 김완에게 "내 칼을 가지고 가서 적을 베어 주고, 내 시체와 유품을 말에 실어 달라. 그려면 말이 나의 고향으로 갈 거다"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에 황대중의 시신을 말 등 위에 얹어주자 그의 애마는 주인을 태우고 300리 길을 밤낮으로 달려 가족이 있는 강진까지 갔고, 장례식 중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황대중의 유족들은 황대중의 묘 옆에 “양건당 애마지총(兩蹇堂愛馬之塚)”이라는 비석을 세운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황대중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정려각이 세워졌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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