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딥스테이트

 

 

딥스테이트(deep state). 쉽게 말하면 국가 운영에 뿌리 깊게 관여하는 기득권 관료집단을 뜻한다. 국가 내 깊숙이 자리 잡고 실제로 국가를 자신들의 이득에 맞게 좌지우지하는 비밀 세력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림자 정부(Shadow Government)와도 비슷한데, 주류 엘리트인 기득권 집단들이 임기가 정해져 있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과는 별개로 정재계 막후에서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며 국가를 조종한다는 음모론에서 파생했다. 1990년대 마약 조직 들과 결탁해 나라를 조종하던 튀르키예 군부 등 공안기구 세력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티르키예어인 '데린 데블레트'를 그대로 영어로 번역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조종하는 숨어 있는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은 오래전부터 자주 나오고 있었다. 그 기원은 유대인 집단이 세계 지배를 획책한다고 주장한 '시온 장로 의정서'에서부터 기인한다. 20세기 초에 나온 이 문서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에도 세계 유력 국가의 정치와 경제, 언론과 사회 등을 완전히 움켜지면서 지배하고 있으며 한 국가 내에서가 아니라 범 국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밀 정부가 있다는 음모론은 계속해서 나왔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등이 그 예이다. 매력적인 소재이다 보니 서브컬처나 창작물에서도 자주 다뤄지는 주제 중 하나이다.

딥스테이트가 최근 들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오바마 행정부때부터였다. 당시 미국 백인 민족주의 극우 세력들이 '연방정부를 조종하는 숨겨진 세력이 있다'라는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도널드 트럼프 역시 2016년 미 대선에 출마하면서 "워싱턴 하수구를 청소하겠다" 며 딥스테이트를 거론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트럼프는 당선 후에도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특별검사 수사를 받고 탄핵소추까지 당하면서 이를 자신을 제거하려는 딥스테이트들의 음모라고 주장했으며 트럼프의 지지자들도 이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다.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이번에도 '딥스테이트를 해체하고 미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 며 인사 비준권과 예산 편성권 등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의회의 권한을 무력화하겠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선거 때도 연방정부에서 비우호적인 기존 공무원들을 숙청해 버리겠다는 공약을 걸기도 했다. 또한 트럼프는 '미합중국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귀속된다'는 헌법 2조를 근거로 대통령은 행정부 운영에 견제받지 않을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트럼프의 행보가 삼권 분립의 균형 및 견제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 역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