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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치까치 설날은 왜 어저께일까?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1. 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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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달, 고드름, 기찻길옆, 고기잡이 등의 동요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윤극영 선생이 1924년 발표한 동요 설날에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가사가 있다. 그렇다면 까치 설날은 왜 어저께일까? 실제 1935년 한 신문에 '까치설'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았다. 까치설이 생긴 이유로 추정되는 설은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설은 전통적으로 설날 전날인 12월 마지막날, 즉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날'이란 의미로 '아치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찬'이나 '아치'는 순우리말로 작은(小)을 뜻하는데 이 '아치'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이다. 실제로 추석이 한가위라고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은 예전부터 '한설', '한첫날'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 설이 가장 개연성이 높다고 한다.

    두 번째 설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이다. 고려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작당해 왕을 없애려 했는데, 까치와 쥐, 돼지와 용 등의 동물들의 도움으로 왕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소지왕은 동물들의 공을 인정하여 십이지신에 넣어주었는데, 이중 까치를 넣을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신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이 생겨났다는 설이다. 다만 원래 설화에서는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였다고 하니 왜곡된 설일 가능성도 높다.

    또다른 설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녹아 있다는 설이다. 일제는 전통문화 말살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이 세는 설을 없애고 자신들과 같이 양력 1월 1일인 '신정'을 새해 첫날인 설날로 쇠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일제는 조선인들이 설날에 세배하러 다니는 것을 금지하거나 떡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설빔을 차려입은 경우 먹물을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윤극영 선생은 노래가사에서 양력 1월 1일 신정을 쇠던 일제를 어제가 설인 까치로 비유했고, 우리 민족의 설날인 음력 1월 1일을 쇠는 우리 설날은 오늘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설 역시 굳이 그동안 길조로 여겨지던 까치를 일제에 비유한 이유는 풀리지 않는다.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속설에 따라 까치가 운 다음 날에 친척과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까치는 시각과 후각이 사람보다 뛰어나고 지능도 뛰어나 주위의 냄새는 물론 사람의 냄새까지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의 표시로 우는데 이러한 습성 때문에 '손님이 오려면 까치가 운다'는 속설이 생겼다고 한다. 그밖에 까치의 무늬와 비슷한 색동저고리를 설 전날에 준비했기 때문이라는 설, 까치의 한자인 작(鵲)이 어제라는 말의 작(昨)과 음이 같아서 까치의 설날이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여담으로 이렇게 설날을 '구정'이라는 예것으로 경시하는 정부의 기조는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에도 계속되었다. 심지어 신정을 설날로 규정하기 위해 이중과세라는 이유로 기업체의 휴무에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음력설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1천여 년 동안 이루어 오던 설날에 대한 국민 인식과 전통문화를 없애고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고, 1989년에는 우리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받아들여 설날을 부활시키고 설날과 앞뒤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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