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황사 모전석탑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6. 7. 00:10300x250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의 건축물.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선덕여왕 시절 분황사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이다. 모전(模塼)이란 뜻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렸다는 뜻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 있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이후 지금까지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수리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패물, 고려시대에 사용되던 옛 화폐 등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탑은 널찍한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모습인데 기단은 벽돌이 아닌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모퉁이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앉아 있다. 두 마리는 수컷, 두 마리는 암컷이다. 1층 몸돌에는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양쪽에 불교의 법을 수호한다고 알려진 인왕산을 조각해 놓았다. 1층의 몸돌 이후 2층부터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탑신은 회흑색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잘라 만들었다. 이는 중국의 전탑 및 석탑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벽돌로 탑을 만들고 싶었으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벽돌을 구울 수 있는 점토도 부족했고 단단한 벽돌을 만들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돌로 벽돌 모양을 만들어서 탑을 세웠고 이것이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해 나간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돌이 흔하고 석재가공기술이 발달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만 일부 학계에서는 중국과는 별개로 서역과의 교류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탑을 쌓는 것이니 당연히 당연히 손이 많이 간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보수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어서 오늘날 남아 있는 모전석탑의 수가 적다. 다만 벽돌로 만든 전탑보다 튼튼하다는 장점은 있다. 당시의 벽돌 자체가 현대의 벽돌처럼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시로 보수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고, 벽돌 쌓기의 구조상 한쪽이 무너지면 와르르 주저앉는다는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에서 파는 카이막은 진짜 맛이 없을까? (6) 2025.06.09 작은부레관해파리/고깔해파리 (0) 2025.06.08 판타지물의 레이피어와 현실의 레이피어 (0) 2025.06.06 소리로 "보는" 소년과 반향정위 (4) 2025.06.05 호모 루덴스 - 유희의 인간 (3)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