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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법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8. 18. 00:10300x250

복수법.
고려 5대 경종이 제정한 법으로 사적제재를 허용하는 법이었다. 한국사를 통틀어 최악의 악법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복수법의 제정 원인은 태조 왕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왕건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방 호족의 딸과 결혼하는 방법으로 호족들을 포섭했다. 그래서 모두 29명의 부인을 두었고 25명의 아들을 낳았다.
문제는 이렇게 왕자가 너무 많다 보니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이러한 왕위 계승 다툼은 4대 왕인 광종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 광종은 개국 공신인 준홍 등이 반역을 모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충격에 빠진 광종은 자신의 정책에 반발하는 호족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왕권에 위협이 되던 호족 세력들의 권력과 재산을 없앴고 호족들은 광종의 공포 정치에 말 그대로 공포에 떨어야 했으며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가문이 몰락했다.
이후 5대 임금인 경종이 즉위하게 되었다. 경종은 선왕의 공포 정치에 떨었던 호족들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종 자체가 광종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즉위하자마자 호족들에 대한 대사면을 실시했다. 또한 흉흉한 나라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효도를 강조했다. 당시 광종의 숙청 과정에서 호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모함하고 밀고하다 보니 서로에게 엄청난 원한이 쌓인 상태였다. 그 와중에 집정(쉽게 말해 재상) 직을 맡던 왕선이 조상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복수를 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고 경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복수법이 생기자 사람들은 호족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너도나도 원한을 가진 사람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들고일어났다. 말마따나 길 가다 누구를 갑자기 때려죽여도 복수 때문이었다고 하면 인정받았고, 사소한 다툼도 살인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또한 복수가 복수를 낳고, 또다시 복수가 복수를 낳는 사태가 발생했다.
심지어 복수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집정 왕선이 태조의 아들이자 경종의 삼촌인 효성태자와 원녕태자를 살해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조정의 최고 관료가 태조의 아들이자 현재 왕의 삼촌을 죽여버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경종은 왕선을 귀양 보내고 1년 만에 복수법을 없애버렸다. 경종 사후 제6대 성종 때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통해 이를 비판하기도 했으며, 국가 차원에서 사적제재를 허용하거나 방치하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일각에 함무라비 법전에 적혀 있는 탈리오 법칙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동해보복, 즉 사적 제재를 허용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혀 다르다. 이 내용은 사적제재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저지른 죄 이상의 벌을 주지 말라는 과잉금지의 원칙(비례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도한 사적제재를 금지하고 법전 - 공권력에 기반한 죄형법정주의와 법치주의의 기초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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