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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전에 사용되어 공성전을 겪었던 수원 화성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8. 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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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6년(정조 20년) 완공된 수원 화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 이후에 지어졌기 때문에 실전에 사용된 적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재미있게도 실전 경험이 있는 성이다. 바로 6.25때인데, 실제로 국군이 장안성을 방어기지화하여 남침한 북한군을 맞아 싸운 전사가 있다.

     

    6.25 때 수원 화성은 큰 피해를 입었다. 북문인 장안문과 동문인 창룡문이 가장 크게 파괴되었고 그밖에 서북공심돈, 화서문, 동북공심돈, 서장대, 북서포루 등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으며 대다수의 성벽도 포탄과 총알세례를 받아 벌집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당시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지고 서문은 서있고 동문은 도망갔네~"라는 노래가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장안문의 경우 초기 북한군의 진격로였고 전쟁 내내 탈환과 재탈환을 거듭했기 때문에 유독 심하게 파괴되었고, 창룡문은 폭약을 싣고 가던 국군 트럭을 미 공군 비행기가 북한군 트럭으로 오인하여 포격하여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었다.

    6.25 발발 후 북한군의 전차부대는 국군의 저지선을 뚫고 수원으로 돌격했다. 이에 국군 총참모장 정일권 소장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수원에서 평택으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고, 본부가 철수하는 동안 수원에 일부 병력을 호위로 남겨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게 했다. 수원에 남은 후방 병력은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을 중심으로 저지선을 구축했다. 당시 장안문 양쪽에는 튼튼한 성벽이 길게 세워져 있어서 전차부대의 남하를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차의 주포였다. 장안문의 옹성과 성벽은 전차의 포탄을 충분히 막아 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옹성과 장안문의 철문은 포탄을 몇 발만 맞아도 쉽게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결국 당시 공병감이었던 최창식 대령은 장안문을 폭파시켜 도로를 끊어버리고 장안문의 잔해를 바리케이트로 삼아 농성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철수하던 수도사단장 이종찬 대령이 이를 목격하고 '현시점에서 북문을 파괴한다고 해서 전술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귀중한 민족의 사적을 인멸케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니 후일 민족의 지탄을 어찌 받을 것이냐?' 라며 말렸다.

    결국 이종찬 대령의 설득에 넘어간 최창식 대령은 장안문 폭파 작업을 취소하고 대신 미군이 지원해 준 대전차지뢰 20여발을 장안문 주위에 매설하고 모든 병력들을 장안문 성벽과 문루로 올려보네 북한군과 대치하게 했다. 1050년 7월 4일 북한군의 전차부대가 장안문에 접근했고 국군과 교전을 개시했다. 이후 국군은 북한군의 기세를 버티지 못하고 장안문의 문루와 성벽에서 내려와 철수했는데, 이때 공격을 서두르던 북한군의 T-34 전차 두 대가 장안문 주위에 매설한 대전차지뢰를 건드려 폭발했다. 6.25에서 우리 국군이 처음으로 북한군의 전차를 파괴한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T-34 한대가 국군의 대전차포에 의해 추가로 파괴되었다. 

    결국 우리 국군은 무기의 열세로 하루 간의 지연전 끝에 북한군에게 수원을 내주었지만 애초에 목적이 미군이 참전할 때까지 북한군의 남하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화성은 1951년 중공군에 의해 한번 더 점령당했다가 미군에 의해 다시 탈환된 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점령되지 않았다. 당시 파괴된 T-34 전차는 1952년 경까지 장안문 앞에 방치되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전후 화성은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복원하였고 결국 이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는 처음에는 수원시의 세계유산 등재 요청에 건축물이 원래 설계가 아닌 복원팀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수백 년 전 그 문화재로 보기 어렵다며 등재를 거부하였지만 수원시에서 축성계획과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된 화성성역의궤를 증거로 제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 복원물, 혹은 최근에 건축된 건물은 거의 없는데 수원화성은 원래 설계 도면과 건축 방법이 완벽하게 남아 있어서 과거의 건축 방법 그대로 재연해서 복원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해서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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