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은 팔레스타인 사마리아 지방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분파였다. 이스라엘 북쪽에는 갈릴래아 지방이 있었고 중간에는 사마리아, 남쪽에는 유다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본래 통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시대 이후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으로, 남쪽은 유다 왕국으로 분열됐다. 그때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고, 가장 번성한 것은 기원전 8세기경이었다.
BC 722년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성이 앗시리아의 공격에 무너졌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앗시리아는 독특한 식민지정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식민지의 50%는 자기 민족을 정착시켰고, 식민지백성의 50%는 자기 나라로 이주시켜서 정착시켰다. 서로 인종을 섞어버려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는 정책이었다. 사마리아사람들은 앗시리아사람들과 결혼했고, 인종이 섞이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잡혼"했다며 불쌍히 여기지 않았고, 이방인만도 못한 유대인으로 멸시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특별히 선택해 선민으로 세웠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다. 이러한 선민의식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으로 유배를 당한 후 더욱더 배타적 성향이 강해지고 공동체 특권의식을 강조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다른 민족과 결합돼 자신들의 단일성이 훼손되는 것을 가장 꺼려서 이방인들과의 교제나 식사를 율법으로 엄격히 금했던 유대인들은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지 못한 사마리아인들을 심지어 개라고도 부르며 경멸했다.
그러다가 BC 586년 남유다의 예루살렘도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다. 많은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가게 되었는데 그 중의 일부는 돌아와서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려 했다. 그때 사마리아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고,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니, 같이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합시다.”라고 제안한다. 그런데 이 제안을 들은 유대인들은 너네들과 함께 우리 하느님을 위한 집을 지을 수 없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명에 따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위한 집을 짓는 것은 우리만의 일이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화가 난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방해했다.
이런 것들이 쌓여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 계속 적대 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소수이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의 전통을 지켜온 고대 이스라엘인의 정통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오직 구약성경의 오경만을 그들의 유일한 경전으로 여기는데, 이를 사마리아 오경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직접 들어가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의 접촉과 대화가 엄격히 금지돼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남쪽 유다에서 북쪽 갈릴래아로 갈 때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고 두 배나 되는 먼 길을 돌아서 다녔다.
정리하자면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사마리아인은 혼혈이었고 성경을 잘 몰랐으며 타락했다고 여겼다. 이교도와 결혼했고 진정한 종교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사마리아인의 관점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깡패들이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너무 강했고 생존을 위협해왔다. 그들은 항상 다윗을 명목으로 그들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먹지도 않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마리아인을 정말 나쁘게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이란 신앙이 이단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되느냐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을 행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사랑하는 자들이다."라고 가르침을 내린 예수가 대단하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