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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만드는 법'을 리포트로 쓴 대학생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1. 9. 00:10300x250

뉴저지주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3학년인 존 A 필립스는 당시 D와 F학점으로 점철된 성적표에 학사경고까지 받아 유급 처분이 내려진 평균 이하의 열등생이었다. 그는 한 과목만 더 낙제하면 퇴학당할 상황에서 저명한 물리학자인 프리먼 다이슨 교수가 개설한 '핵무기 전략과 군비축소' 과목에 수강신청을 했다. 수강생이 8명에 불과한 조촐한 수업이었다.
수업과 토론이 진행되던 어느 날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로 미국 정부를 위협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현재에는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봐 온 설정이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못 할 생소한 가정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핵폭탄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필립스는 '과연 그럴까? 나같이 중간도 못 되는 물리학도가 이론적으로 원자폭탄을 설계한다면 정부에 새로운 경각심을 일으키는 정책적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필립스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립 기술 정보 서비스(NTIS)'를 방문해서 기밀문서 취급에서 해제되어 일반인의 접근이 가능해진 자료들을 뒤졌고, 그 결과 로스앨러모스 계획 문서들과 미 미 국립기술정보국에서 낸 원폭 개발기술의 역사서, 그리고 원폭제조 프로젝트에 처음 참여한 과학자들에게 배부된 1943년판 기술지침서 등을 구했다. 그 지침서에는 당시까지 핵분열 현상에 대해 알려진 모든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 자료를 구하면서 그가 지불한 돈은 단돈 25달러였다.
그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학기 연구 과제로 원자폭탄 제조법을 쓰기로 결심했고 다이슨 교수 역시 필립스가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방향만 잡아줄 뿐 구체적인 작업은 혼자서 할 것', '정부의 기밀 정보를 얻지 말고 공개되어 있는 자료들로만 해결할 것'을 조건으로 허락하며 지도교수가 되는 것을 승낙했다. (다이슨 교수의 허락을 받은 다음 NTIS에 가서 자료를 찾았다는 얘기도 있다.)
필립스의 원폭(그는 플루토늄 원자탄을 설계하고 있었다) 설계는 거의 완성되었으나, 마지막으로 화약의 배치 방법과 그에 알맞은 적절한 화약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연극 동아리에서 공연 연습으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스텝과 킥의 패턴에서 아이디어를 찾았고, 마지막으로는 화약의 종류를 알기 위해 듀폰사의 폭약과장과 통화했다. 그는 자신이 높은 사람인 척 전화해서 '원폭'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고 요령껏 유도질문을 하는 방법으로 플루토늄 내파형 핵폭탄의 제원을 알아냈다.
결국 필립스는 1976년 '원자폭탄 설계의 원리: 테러집단과 비핵국 플루토늄 핵분열탄 설계 가능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34페이지 분량의 리포트를 완성했다. 이 리포트는 책과 논문으로 공개된 핵폭탄 제조 지식만으로도 원료만 있다면 충분히 2차대전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과 같은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이론적, 기술적으로 검증한 내용이었다. 당시까지 원자폭탄을 만들려면 최소 10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필립스는 2천 달러로 원자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고 리포트에 밝혔다.
이 리포트가 공개되자 (같은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기자에게 해당 내용에 대해 알려줬고, 이후 뉴욕 타임스나 LA 타임스 같은 거대 미디어에 해당 내용이 실리면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베트남전쟁 직후 핵전쟁의 공포가 만연해 있던 세상은 발칵 뒤집혀졌다. 리포트의 결론은 "핵 기술과 정보에 대한 보다 엄격한 보안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지만, 세상이 주목한 건 그의 핵폭탄 레시피였다. 심지어 캘리포니아대학 저명 핵공학자 프랭크 칠턴은 "실제 폭탄 제조법과 다르지 않음을 100%" 보증했다. 그 리포트로 필립스는 A학점뿐 아니라 '원자탄 소년(A-Bomb Kid)'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후 프랑스 대사관에서 리포트의 사본을 요청하다 거부당하기도 하고 파키스탄 대사관에서는 필립스에게 직접 접촉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그밖에 정체가 불분명한 여러 개인과 단체가 그에게 연락해왔고, 여성들의 청혼 편지와 선물도 쇄도했다. '타임' 같은 시사잡지와 TV 쇼에도 출연했다. 정부와 의회, CIA와 FBI도 그를 주시했다. FBI에서 그의 리포트를 조사한 결과 법을 위반한 사항이 없고 논문에 기밀 데이터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필립스는 호된 유명세를 치렀다.
그렇다면 필립스는 대학 졸업 이후 원자폭탄 관련 업계에서 일했을까? 정반대였다. 필립스는 이후 반핵단체에 가입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반핵운동가로서 활동했다. 1979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 후보로 코네티컷에서 하원의원 선거에 두 번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하지만 그는 선거운동당시 얻은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치 데이터 분석 회사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설립하고 CEO가 되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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