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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징대학살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4. 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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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중일전쟁 중 난징(南京)을 장악한 일본은 6주에 걸쳐 난징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중국 군인들을 무장 해제시켰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들은 난징시로 벌떼처럼 몰려와 온갖 잔혹행위를 일삼았다. 중국 군인이 군복을 벗고 민간인 속에 섞여 들어갔다는 구실로 일본군은 사령관의 묵인 하에 민간인 남자들에 대한 조직적인 집단 살해를 자행했다. 일본군은 중국인 시민들을 무리 짓게 하고 뒤 손을 등 뒤로 묶은 후 성곽 외곽으로 행진하게 한 다음 그곳에서 기관총과 창검으로 무참하게 살해했다. 뿐만 아니라 칼로 난도질하거나 생매장까지 이루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심심하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죽였고 산 채로 묻어버리거나 장작불로 태워 죽였고 몽둥이로 때려죽이기도 했다. 충격적인 것은 포로나 민간인들을 총검술 연습이나 목베기 시합에 사용하기도 했다. 유명한 '100인 참수베기 경쟁'도 이때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100인 참수 경쟁은 당시 일본 언론에서 대서특필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실을 기사화 한 기자는 죽은 사람들이 다들 적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며 이후 죄 없는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난징 대학살에서 죽은 사람들은 최소 10만 명 최대 3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일본군이 불태우거나 양쯔강에 던져버려서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던 희생자의 수는 포함되지도 않은 수치이다. 그밖에 강간과 약탈이 자행되었으며 난징 시내의 1/3 정도가 불에 타 없어졌다. 물론 일본은 최소 사망자를, 중국은 최대 사망자를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난징시가 사람이 그렇게 많냐라며 희생자 수가 뻥튀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학살은 난징시뿐만 아니라 인근 위성도시에서도 일어났다. 참고로 일본에 떨어진 2개의 원자폭탄으로 사망한 사망자는 히로시마 사망자 추산 9만~16만 6천 명. 나가사키 사망자 6만~8만으로 최소 15만~25만의 사망자가 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후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를 제외한 숫자) 당시 일본군은 핵폭탄 한발만치의 민간인을 자기들 손으로 학살한 것이다.

    전쟁이 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을 포함한 11개국이 조직한 극동국제군사재판과 난징전범재판에서 난징 대학살을 저지른 전범들에 대한 특별재판을 진행했다. 중국 총사령관 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와 제6사단장으로 대학살에 직접 참여했던 다니 히사오는 각각 A급, B급 전범으로 판결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그런데 난징 대학살의 실질적 책임자로 추정되는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는 황실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기소를 면했다. (이후 황적을 뺏기고 평민으로 강등당했으며 많은 재산을 잃기는 했다.)

    일본 내에서는 원래 대학살 인정파가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일본 극우 세력들이 전면에 나서고 이들에 의한 역사 왜곡 시도가 점점 심해지면서 '그런 사건은 없었다. 중상모략이다.' 라고 하는 주장과 위에 언급했듯 '학살이 있었긴 하지만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다.'라고 하는 중도파도 많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넷우익 들은 난징대학살의 주장하는 사람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일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는데 난징대학살을 서구권에 알린 책을 쓴 중국계 미국인 2세인 아이리스 장에게 살해 협박과 위협을 가하는가 하면(아이리스 장은 결국 자살했다.), 난징대학살 관련 책을 출간하려던 출판사를 공격해서 출간을 막기도 했다. 중국의 위키백과라고도 할 수 있는 바이두 백과에서 "南京大屠杀"(난징대도살) 문서는 일본 넷우익들의 반달을 우려해 일반 회원의 편집 자체를 막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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