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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된 노비 임복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4. 22. 00:10300x250

조선시대 노비는 크게 주인과 함께 사는 솔거노비와 주인집에 같이 살지 않는 외거노비로 구분한다. 외거노비는 주인의 신뢰를 얻어 지주들이 소유한 타 지역의 땅을 소작하고 대신 쌀과 곡식을 바쳤는데 외거노비는 재산을 소유할 수 있어서 재산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일반 평민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도 했다.
성종 16년인 1485년 가뭄이 들자 진천에 살던 노비 임복은 2천 석의 쌀을 백성들 진휼용으로 써달라며 조건 없는 기부 의사를 밝혔다. 한명회, 이극배, 유호 등이 성종에게 임복이 바친 곡식 2천 석은 1백 명의 생명을 구하기에 족하고 그 뜻이 가상하니 면천해 주자고 청했다. 하지만 심회, 홍응 등은 이게 선례가 되면 주인을 배반하는 노비들이 많아질 테니 안된다고 반대했다.성종은 임복을 직접 불러 원하는 바를 불렀는데 임복은 네 아들을 면천해 양민이 되게 해달라고 청했다. 성종은 대사헌 이경동의 면천 반대 상소에도 불구하고 임복을 면천해 주었는데, 다음 달 임복은 쌀 1천 석을 더 바치면서 네 아들 모두 평민이 되었고 속량된 임복 일가는 진천을 떠나 타 지역으로 이주했다.
임복에 대한 기록은 이후 전해지는 것이 없다. 하지만 임복의 면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라 남평에 사는 사노 가동이 2천 석을 납속하고 양민이 되기를 청하였지만 성종은 비슷한 사례가 계속 나타날까봐 그의 곡식을 받지 않고 면천을 거부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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