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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 엠블럼에 나치 문양이 박히게 된 이유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7. 5. 00:10300x250

1930년대 바이에른 뮌헨은 구단 역사상 첫 리그 우승(1932년)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회장인 쿠르트 란다우어와 감독인 리하르트 돔비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정권으로부터 '유대인 클럽'이라는 낙인이 찍혀 탄압과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회장과 감독은 강제로 사임당했으며 구단은 게슈타포의 집중 감시와 사상 검증을 받았다. 쿠르트 란다우어 회장은 다하우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정권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로 주전 선수들이 2차 대전 최전방 전선으로 최우선 징집되어 많은 희생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단과 선수들은 란다우어 전 회장에 대한 비밀스러운 지지를 보이는가 하면 친나치 구단주 임명 거부 및 태업을 실시했다. 경기 전후로 의무화되었던 나치식 거수경례를 갖은 방법을 써가면서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1938년 나치 정권은 독일 내 모든 스포츠단체를 민족사회주의 체육 국가동맹(NSRL) 산하로 편입시켰다. 나치 정권은 프로 축구 체제를 전면 부정하고 아마추어화를 강제했는데, 이로 인해 유대인 후원자들의 자금이 끊긴 바이에른 뮌헨은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었고 전력 약화로 인해 하위권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후 독일 내 모든 축구 클럽은 독수리와 하켄크로이츠가 새겨진 나치 문양을 엠블럼에 강제로 삽입하거나 유니폼에 부착하도록 강제함에 따라 바이에른 뮌헨의 엠블럼에도 나치 하켄크로이츠가 새겨지게 되었다.
2차 대전 종료 후 독일 내에서는 모든 나치 상징물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바이에른 뮌헨 역시 원래 엠블럼으로 회귀했다. 또한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탈옥한 후 망명했던 쿠르트 란다우어 회장이 다시 복귀하면서 구단의 본레 정체성을 되찾았다. 지금도 바이에른 뮌헨 박물관에 가 보면 구단이 나치에 저항했던 역사를 전시해 놓고 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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