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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 나의 크라머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12. 2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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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나의 크라머' 제목의 크라머는 독일의 축구선수이자 감독이었던 데트마어 크라머이다. 1925년생으로 키가 작아서 '도르트문트의 나폴레옹'으로 불렸다. 다리부상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접고 2차 대전 때 낙하산병으로 복무한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팀 감독과 서독 축구협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다 1960년 일본 대표팀 고문이 된다. 당시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의 전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정말 중요했기 때문에 축구 선진국인 서독에서 선진 축구를 전수받기를 원하는 상황이었다.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협회 활동을 할 때마다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축구 박사'로 불렸던 크라머는 개인 면담을 통해 일본 선수들의 면면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각자 맞는 개인 훈련을 시켜 그들의 잠재력을 높였다. 그의 지도 아래 일본대표팀은 도쿄 올림픽에서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를 꺾고 8강에 올랐고 1968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4강에 진출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후 크라머는 일본 사커 리그(JSL) 창설과 일본인 지도자의 교육에도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덴노로부터 3등급 문화 훈장을 수여받고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등재됐다.

     

    크라머는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를 순회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독일 대표팀 수석코치부터 시작해서 미국 대표팀도 맡았고,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유러피언 컵과 인터컨티넨탈 컵 우승을 하기도 한다. 바이어 레버쿠젠 시절에 차범근을 영입하고 그를 중용하면서 한국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올림픽 대표팀 총감독과 기술고문을 맡게 되지만 당시 한국 특유의 전근대적인 훈련 시스템과 전술을 고집하는 코칭스태프들과 충돌하여 중도 하차한다. 스타플레이어들에 너무 의존하고 혹사시키는 한국 축구시스템도 비판했으나 협회와 지도자의 말만 받아 적은 언론은 그를 외면했다. 결국 그가 빠진 올림픽대표팀은 결국 3무로 8강 진출에 실패한다. 하지만 당시 그의 지도를 받은 서정원과 신태용 등은 큰 감명을 받고 축구철학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밖에 사우디 아라비아와 그리스, 프랑크푸르트, 태국, 말레이시아, 중국 등 전 세계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감독이나 기술고문을 맡았다. 2002년 축구계에서 완전히 은퇴한 후 2015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여담으로 2002 한일월드컵때 일본 대표팀이 러시아를 꺾고 월드컵 역사상 첫 승을 거두었을 때 현장에서 직접 경기를 관전한 후 자 "전력을 다한 선수들과 감독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고 싶다."라며 축하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이 만화 제목이 "안녕, 나의 히딩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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