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일본인들이 영화 오펜하이머를 불편해 하는 이유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4. 4. 11:51
    300x250

     

    일본에서 영화 오펜하이머를 매우 불편해 생각하는 논리는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폭탄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것이 잔인하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진짜 적반하장이자 어이없는 피해자 코스프레 마인드이다. 애초에 저 전쟁을 일으킨 게 일본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간인 학살 면에서도 사실 일본이 핵 두 방 맞았다고 억울해할 건 아니다. 2개의 원폭으로 히로시마 사망자 추산 9만~16만 6천 명. 나가사키 사망자 6만~8만으로 최소 15만~25만의 사망자가 났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이후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를 제외한 숫자로 정말 많은 민간인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

    그럼, 과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이 죽인 죄없는 민간인은 얼마나 될까? 일단 최우선적으로 난징 대학살을 꼽을 수 있다. 난징 대학살에서 죽은 사람들은 최소 10만 명 최대 3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물론 일본은 최소 사망자를, 중국은 최대 사망자를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난징시가 사람이 그렇게 많냐라며 희생자 수가 뻥튀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학살은 난징시뿐만 아니라 인근 위성도시에서도 일어났다. 당시 일본군은 100인 참수베기 경쟁 같은 거나 하면서 핵폭탄 한발만치의 민간인을 자기들 손으로 학살한 것이다.

    또한 관동대지진때 죄 없는 조선인들의 학살도 극심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고 루머가 퍼져서 조선인들이 일본의 자경단과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약 6천여 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는데 (일본에서는 2~3백여 명 정도라고 주장했다), 2013년 강효숙 원광대 교수가 당시 독일 외무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대 2만 3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인 자경단과 경찰, 군인에 의해 조직적으로 살해당했다는 보고를 분석해서 발표했다. 또한 일본에서는 일반 시민들과 자경단의 우발적인 참사라고 주장했지만 군인과 경찰이 학살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다는 증거도 차고 넘친다. (물론 그 와중에 조선인들을 지켜 준 선량한 군경과 시민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당시 돌아다녔던 루머 중에 "조선 여자들이 치마 속에 폭탄을 숨기고 돌아다닌다"도 있었다고 한다. 치마 속에 폭탄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치마를 들춰내야 한다. 그다음엔 어떻게 됐을까?

    태평양 전쟁때 일본군의 학살도 엄청났다. 심지어 일본군은 미군과 전쟁하다가 질 것 같으면 현지 민간인들이 비밀을 누설할 수 있다며 자살을 강요하거나 학살했다. 사이판 전투 시 민간인들에게 "미군이 들어오면 너네를 다 강간하고 죽일 거다. 그럴 바엔 미리 죽는 게 낫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깨끗하게 죽여줄게" 라면서 자살 강요와 학살로 사망시킨 민간인만 2만여 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학살은 필리핀의 마닐라에서도 이루어졌다. 1945년 필리핀에서 퇴각하던 일본군은 당시 필리핀에 남아 있는 시민들이 미군에 협력적이라고 판단, 미군에 대한 협조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 그 과정에서 약탈과 강간도 함께 자행되었다. 이 학살로 마닐라 내의 건물 30%가 파괴되었고 민간인 약 12만 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일본 넷우익 들은 아직도 '미국이 학살하고 일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웠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건 일본 영토에서 일어난 전투인데도 민간인들을 방패로 써버렸다. 당시 일본군은 미군을 오키나와에서 최대한 막아서 본토 상륙을 막는 전략을 세웠는데 이러한 작전을 세운 배경은 당시 일본 정부나 다른 국민들은 오키나와를 일본 땅이지만 식민지, 그러니까 본토 국민보다 한 단계 격이 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오키나와를 버리는 패로 사용한 것이다. 물론 이때 미군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들도 많았지만 일본군의 민간인 총알받이 옥쇄 강요와 자살 강요도 극심했다. 결국 이때 민간인 약 12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이걸 보고 치를 떤 미군이 더 이상 미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핵폭탄 투하를 결심할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이 피해를 봤다는 것만 강조할 뿐, 자기네들의 치부는 덮어버리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에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이 관동대지진때 조선인 학살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인터뷰해서 파문이 일어난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당시 희생된 한국인을 희생당한 한국인을 추도하는 행사에 도쿄 지사의 참석과 추도문 발송도 사라졌다.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대지진 100년-은폐된 조선인 학살' 같은 전시회가 일본에서 열리고 있지만 일본 정치인과 언론들은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자국민에 대한 피해 내용도 덮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오키나와 전투와 관련해서 일본 정부가 고교 교과서에 '일본군이 집단 자결을 강제했다'는 표현을 삭제하기로 한 적이 있었다. 이 교과서 말대로라면 주민 스스로가 알아서 자결을 선택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키나와 주민 10만 명이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다. 

    이 정도면 누가 누굴 보고 잔인하다고 하기 전에 '아, 우리 땅에 핵폭탄이 두발밖에 안 떨어진 게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300x25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