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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보다 하늘을 사랑한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11. 1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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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프랑스의 작가이자 공군장교. 어린 왕자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12세 때 당시 유명했던 비행사 베드린이 모는 비행기에 탈 기회가 생겼다. 이 때는 미국에서 비행기가 발명된 지 불과 9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이때의 첫 비행이 큰 감동으로 남았는지 그는 크면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였던 문학과 함께 비행은 생텍쥐페리의 인생에 아주 큰 부분이 되었다. 생텍쥐페리는 1921년 4월 입대했다. 처음에는 육군 제2항공연대 항공정비병으로 근무했지만 항공기를 조종하고 싶은 생각이 너무 커서 비행기 조종 개인교습을 받아 민간인 비행사 시험에 합격한다. 이후 1922년 남프랑스 이스토르에서 육군항공대 조종 학생이 되어 군용기 조종 면허장을 획득하고 부르제 공항에 주둔한 제33비행연대에서 소위로 근무하게 되면서 결국 꿈에 그리던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하지만 1923년 항공기 추락사고로 두개골이 골절되어 소위로 의병 전역했다.

    이후 그는 재입대를 하려 했지만 약혼녀와 가족들의 반대로 포기하고 세일즈맨 등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 재입대를 반대했던 약혼녀와 헤어지기도 했다. 몇몇 산문과 시를 집필하였고 첫 저서인 '비행사'를 발표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다가 1926년 생텍쥐페리는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취업하여 카사블랑카와 다카르 간의 정기 항공우편 조종사가 된 것이다. 이듬해부터는 야간 항공우편 비행을 시작했으며 불시착 항공기 수리 업무와 조난 비행사 구조 업무도 병행했다.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 등을 출간하고 수상도 하면서 인정받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도 이때였다. 그동안 여러 번의 비행기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도 했지만 아프리카 북서부를 통과하는 항공우편 항로를 개척하고 개설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생텍쥐페리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예비군 동원령으로 다시 군에 들어왔다. 민항기 조종 경력을 인정받아 대위 계급을 부여받고 프랑스 공군 제33정찰비행대대 2비행대에서 정찰기 조종사가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함락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 '전시 조종사'와 '성채', 그리고 그 유명한 '어린 왕자'를 출간했다. 

    하지만 전쟁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나치 독일의 괴뢰국인 비시 프랑스에서 전 세계적인 유명 작가가 된 생텍쥐페리를 일방적으로 정부 요직에 임명했고 반대편인 자유 프랑스 정부의 샤를 드골은 생텍쥐페리를 친독일 인사라고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등 색깔 논쟁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결국 생텍쥐페리는 자유 프랑스군 공군에 재입대했다. 당시 프랑스 공군의 조종사 제한 연령보다 8살이나 많았고 여러 번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조종사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워낙 유명인사였고 자유 프랑스군 사령부 고위 장교들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이전에 입은 부상으로 제대로 비행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신기종 비행기에 익숙치 못해서 사고를 쳤고 그를 괴롭힌 색깔논쟁은 폭음으로 이어졌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생텍쥐페리는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반면 문학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져서 비행 전 점검이나 엔진 예열도 하지 않고 책을 읽는가 하면, 독서를 마무리한 뒤에 착륙하겠다며 1시간을 상공에서 선회하다 착륙한 것도 이때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러던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지중해 상공에서 정찰비행중 실종되었다. 향년 44세. 그러다 2000년 수중탐사장비로 바닷속 깊숙이 가라앉은 라이트닝 정찰기가 발견되면서 그의 사망이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비행기에 피탄 자국이 없어서 정비불량으로 인한 추락, 혹은 자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P-38 우측엔진에 피탄으로 인한 윤활유 누유 흔적이 발견되면서 기습공격을 받아 엔진 하나가 망가져서 추락했다는 설이 유력해졌다. 

    2008년 당시 독일 조종사였던 호스트르트 리페르트가 자신이 생텍쥐페리를 격추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88살의 나이에 고백을 한 호스트르트 리페르트는 사실 생텍쥐페리의 팬이었다고 한다. 격추당시엔 그가 생텍쥐페리인 줄 몰랐다가 이후 그의 실종기사를 접하고 나서야 자신이 격추한 사람이 생텍쥐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사실을 평생 비밀로 간직하다가 생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고백을 한 것이다. 평생 가장 후회한 것이 생텍쥐페리를 격추한 것이며 아직도 자신이 격추한 사람이 생텍쥐페리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한다.

    여담으로 생텍쥐페리는 '상공 우주 분야에서 손꼽히는 인물 100인' 순위에서 공동 25위에 올랐다. '어린 왕자'나 '야간 비행' 등 여러 항공 관련 소설을 썼고, 북아프리카 항공우편 항로를 개척한 공로 등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살아생전 색깔론에 휘둘렸지만 오늘날 프랑스인들은 그의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프랑스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군대에 자원입대해서 조국을 위해 싸운 그를 존경한다. 그의 이름을 따 '리옹 생텍쥐페리 국제공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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