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철갑상어와 캐비어(캐비아)의 역사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10. 18. 00:10
    300x250

     

    사실 철갑상어는 상어가 아니다. 연골어류인 상어와 비슷하게 생겼을 뿐인 민물에서 사는 경골어류이다. 옛날에는 한강에도 살았다고 하지만 현재는 멸종되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온순하며 크면 몇 m 까지 자라는 종도 있지만 사람을 공격하지도 않는다. 먹이는 바닥에 사는 수생곤충이나 연체곤충, 지렁이 등이다. 다만 물고기를 사냥하는 종류도 있다. 철갑상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는 비늘, 껍질이 단단해서라고 한다. 잘 마른 비늘은 진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고.
     
    고대에는 철갑상어의 고기가 매우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철갑상어 하나가 양 100마리의 가격과 같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로마에서도 철갑상어의 인기가 좋았다. 중세 유럽의 왕들도 매우 선호하는 식재료라서 철갑상어의 소유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도 철갑상어 요리가 연회에서 귀족들에게 제공되자 다들 감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에서는 좋은 품질은 아니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철갑상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철갑상어의 알인 캐비어는 원래 별로 인기없었던 식재료였다고 한다. 고대 로마 시절엔 고기만 취하고 알은 돼지에게 주거나 땅에 버릴 정도의 인식이었고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농민들의 귀중한 영양공급원이었다. 당시 로마 정교회에서는 1년에 최대 200일 동안 육식을 금지하는 금식기간이 있었는데, 이때 철갑상어만이 유일하게 금식기간에 먹어도 되는 고기로 정교회의 허가가 내려진 음식이었다. 서민들은 비싼 철갑상어 고기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철갑상어알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었다. 이후 캐비어는 수도원을 거쳐 황제에게까지 진상되면서 점차 신분 상승을 하게 되었다.
     
    캐비어는 약용으로도 사용되었다. 9세기 무렵 페르시아인들은 약용 목적으로 다양한 생선의 알을 채집했는데 그 가운데엔 캐비어도 있었다. 실제로 캐비어에는 오메가3나 지방산이 풍부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이후 캐비어는 젊음을 유지시키는 묘약, 혹은 최음제나 정력제로 각광받았다. 캐비어를 소금에 절여 먹은 것도 페르시아인들이 최초라고 한다. 당시 중국이 잉어알을 소금에 절여 먹던 방식에서 유래했는데, 이후 캐비어의 보존 기간이 늘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캐비어의 전파에는 몽골도 한몫했다. 13세기 몽골의 러시아 정벌 때 바투 칸이 식사 후 디저트로 나온 소금에 절인 철갑상어 알, 즉 캐비어의 묘한 맛에 매료되었고 이후 캐비어가 상류층이 즐기는 귀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러시아 짜르는 "그 해 처음 만든 신선한 캐비어는 오직 황제만이 먹을 수 있다"라고 선언했으며, 영국의 에드워드 2세는 캐비어를 만드는 철갑상어를 아예 왕실 물고기로 지정해서 기사 작위를 수여하고 철갑상어는 잡히는 대로 모두 왕실에 바치라는 명령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루이 13세 역시 캐비어를 매우 즐겼다고 한다. 
     
    이렇듯 캐비어는 러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점점 귀한 몸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18~19세기 무렵 유럽에서는 캐비어가 귀족들의 부와 지위를 상징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신선한 캐비어를 내놓으면서 자신들의 재력을 자랑하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후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캐비어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다. 전직 해적이자 해운업자었던 요아니스 바르바키스가 참피나무통을 이용해 캐비어를 먼 곳으로도 유통이 가능하게끔 만들었으며, 유럽에 깔린 철도도 캐비어 유통에 한몫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주 소비층이었던 귀족들이 사라지면서 캐비어 수요가 대폭 감소하자 러시아는 캐비어를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러시아 혁명 이후 혁명정부에 자금도 부족하고 다른 나라와 모든 무역이 멈춰서 인민들이 굶주릴 위기에 처했을 때 유일하게 캐비어만 유통이 가능해서 현물로 밀을 사올 수 있었던 적도 있었다.) 결국 미국을 위시한 서방 나라로도 유통이 확대되었다. 처음에는 비리고 짠 캐비어 특유의 자극적인 맛 때문에 시식회에 뱉는 통이 따로 있을 정도로 반응이 안 좋았지만 특유의 오묘한 맛과 '러시아 귀족들이 망하기 직전까지 먹던 고급음식'이란 스토리가 붙어서 상류층에게 먹혀들었고 맛이나 효능보다는 사치품으로서 소비되었다.

    300x25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