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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전범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한 전범들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10. 28. 00:10300x250

1946년 5월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일본군의 주요 전쟁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극동국제군사재판이 열렸다. 12명의 재판관이 일본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 외 28명을 재판했다. 2년 6개월 후인 1948년 판결이 나왔는데 사형 7명, 종신형 16명, 유기금고형 2명의 판결이 내려졌다. 2명은 재판 도중 사망했으며, 1명은 정신이상(매독)으로 인해 면제되었다.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비교되지만 실상 관련자들의 색출과 처벌이 철저하지 않아서 억울한 사람이 사형당하기도 했고 정작 단죄받아야 할 범죄자가 재판을 피하기도 했다. 일왕의 기소여부도 논란이 되었고 무엇보다 전쟁 후 격화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 냉전과 대만의 국공내전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는 약간 흐지부지하게 끝난 감도 있었다.
일본의 A급 전범들은 전범재판에서 자신들의 행위가 평화 파괴죄나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들은 이들 범죄가 전쟁 당시에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전쟁 후 새로 생긴 법으로 자신들을 처벌하는 것은 소급 적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변호인단은 원폭 투하가 인류 최악의 살인 행위라며 미국을 전범국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근거는 뉘른베르트 재판이었는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고, 침략 전쟁의 범죄는 국제법상 명백한 범죄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부는 원폭 투하 역시 전쟁을 종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재판장이었던 윌리엄 웹 재판장은 재판부 내부에서 중재는커녕 갈등과 분란만 조장하는 등 리더십이 부재했다. 11명의 재판관 중 3명은 유죄판결에 대해 반대의견을 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인도의 라다비노드 팔로 그는 일본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조직적인 학살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며, 원자폭탄 투하를 고려할 때 미국과 동맹국도 유죄라는 논리를 펼쳤다. 이러한 반대의견은 이후 일본 극우 세력들에 의해 아주 잘 사용되었는데, 그들은 이 의견들을 입맛대로 취합하여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하였다.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는 라다비노드 팔 재판관의 기념비마저 세워졌다.여담으로 '명예 독립군'으로 유명한 무타구치 렌야도 이 도쿄재판의 피고에 올랐는데 그의 행적이 재판에 알려지자 검사 측과 판사 측이 엄청 비웃었으며, 반대로 변호인단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2년 후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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