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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1. 1. 21:40300x250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수집, 보존, 관리, 전시하며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술전시관이다. 원래 독립기념관을 세우자는 논의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있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다가 1982년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식민지 서술 부분이 한국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국론이 결집되어 건립이 추진되게 되었다.
총 7개의 전시관에 9만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본관인 '겨레의 집'과 독립기념관을 상징하는 '겨레의 탑', '입체상영관',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추모의 자리', '통일염원의 탑' 등이 있다. 그밖에 '백련못과' '불굴의 한국인상', '광개토대왕릉비',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등이 유명하다. 부설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있는데, 이 연구소는 독립운동에 관한 각종 도서와 자료를 정리, 보관하면서 독립운동사에 관한 학술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이 지어진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흑성산 일대는 풍수지리상 '금계포란형'이라 하여 금닭이 알을 품은 듯한 형세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 건설 부지를 선정할 때부터 이동거리와 교통, 역사성, 경제성과 함께 풍수를 감안했다고 전해진다. 야사에 따르면 박문수의 후손들이 박문수의 묘를 지금의 독립기념관 자리에 쓰려고 했는데 어느 유명한 지관이(혹은 그 지관의 유령이) '이곳은 2~3백 년 후 나라에서 요긴하게 쓸 땅이므로 그때 가면 이장해야 하니 다른 곳에 묘를 써라'라고 하여 십여 리 떨어진 북면 은석산에 묘소를 정해졌다고 한다.
원래 1986년 8월 15일 개장할 계획이었으나 개장 열흘 전인 8월 4일 화재가 발생해 본관이 불타 개관이 1년 늦어졌다. 시공사인 대림건설이 저가수주를 하는 통에 싼 값으로 하도급을 줬고, 하도급을 받은 현대전업이 인건비를 절감한다고 기능공 6명 중 4명을 무자격자로 한 게 나중에 밝혀졌다. 화재 이후 대림건설은 일간지에 사과광고를 내고 복구비 전액을 부담한 후 내연재로 재공사하여 1년 뒤인 1987년 8월 15일 개관했다. 한편 당시 정권에서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앞당기고 관리감독을 부실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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