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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1. 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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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이전까지 한국축구는 '체력은 되는데 기술이 안된다'라는 게 일반론이었음. 그런데 히딩크는 역으로 '한국팀은 기술은 충분하다. 안 되는 건 90분 동안 쉼 없이 뛰어다닐 수 있는 체력이다.'라고 진단내림. 그리고 대표팀 선수들의 체력훈련을 겁나 시킴. 결국 우리 대표팀은 90분은 물론 연장전도 전반전처럼 뛰어다닐 수 있는 체력을 만듦. 이때 했던 체력테스트는 아직까지 2002 대표팀이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고 하며 버피 소리만 들어도 경기할 정도였다고 함. 또한 이때 최초로 대표팀에 '체계적인 선수관리'가 시작되었다고 함. 이전까진 진짜 주먹구구식으로 지도자 기분에 맞춰 트레이닝이 이루어졌다면 히딩크 때부터 체력 관리 전문 트레이너나 비디오 분석관 등이 생겼음. 의무팀과 병원 전속계약도 이때 처음으로 이루어졌음.
     
    2. 위계질서 및 선후배 문화 타파. 그라운드에 뛰는 11명은 동등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줌. 이전까진 진짜 대표팀 안에서도 중대장 축구가 알게 모르게 자행되었으며 한창 속공 나가야 할 때 나이 많이 먹은 고참이 뛰어가기 싫다고 갑자기 공을 뒤로 보내라고 해서 지공으로 바꾸는 일도 있었다고 함. 그걸 히딩크가 카리스마로 팀 전체를 휘어잡고 선배고 스타플레이어고 나발이고 '내 밑엔 나머지 너넨 다 똑같아'라고 만듦. 실제 대표팀의 맏형 노릇을 하려던 모 선수와 최고 스타플레이어인 모 선수는 히딩크에게 내쳐졌다가 백기를 들고 돌아와서 겁나 헌신적으로 뛰었음.
     
    3. 특히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맡을 당시 조건이 '선수 선발에 대한 전권 부여'였음. 이전까진 감독의 파벌에 따라 대표팀 멤버가 바뀌고 탕평론(?)에 의거 '이 학교 몇명, 저 학교 몇 명, 요 학교 몇 명...' 이런 식의 선발도 있었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도 높으신 분들이나 선배들에게 밉보이거나 명문대 출신이 아닌 선수들은 기회를 얻기 어려웠음. 젊고 재능 있는 유망주도 어린애들은 단계 밟고 올라오라며 기회가 안 줬음. 하지만 히딩크는 그런 거 일절 배재하고 자신에게 주워진 절대적인 권력으로 팀을 만들어 말 그대로 당시 대한민국에서 나올 수 있는 최정예 멤버로 선수단을 꾸림.
     
    4. 전폭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음. 당시 히딩크호는 역사상 유래가 없을 장기 합숙을 실시하면서 조직력을 극대화시킴. 축구에서 조직력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한 나라 대표팀과 그 나라 리그 프로팀이 붙으면 대표팀이 작살나는데 그게 조직력 때문임. 당시 축구계는 월드컵 열리기 전 해 겨울부터 월드컵 열리기 직전까지 초장기 합숙 훈련을 하면서 발을 맞춤. 심지어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는 K리그를 아예 월드컵 이후로 미뤄버리고 월드컵 개막 전에는 대표팀 선수들을 다 뺀 리그컵대회를 열어버림. 이게 가능했던 건 대부분의 선수들이 국내파였기 때문이었음. 이제는 다시 하라고 해도 불가능함. 다만, 모든 게 합숙빨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우리나라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중국이나 카타르가 장기 합숙을 했었지만 다 실패했었음. 결국 중요한 건 합숙 기간이 아니라 합숙 기간 동안 뭘 하느냐라는 얘기
     
    5. 월드컵 개최 직전까지 히딩크에 대한 여론은 최악이었음. 팬들과 언론은 물론 축구인들도 히딩크를 엄청나게 공격했음. 평가전을 할 때마다 0:5로 깨져서 오죽하면 오대영이란 별명까지 붙을 정도였고, 선수선발도 맘에 안들고 당시 최신전술이라는 4백을 안 쓰고 3백을 쓴다고 또 겁나 까였음. 하지만 히딩크의 신념은 확고했고, 당시 대한축구협회에서 히딩크를 최대한 커버해 주면서 히딩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었음. (여담으로 월드컵 이전에 히딩크 까는 일에 가장 앞장섰던 모 해설위원은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히딩크의 리더십을 찬양하는 책을 재빠르게 출간해서 돈을 꽤 벌었다고 함)
     
    6. 히딩크의 또다른 장점 중 하나는 정보력이었음.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변방의 한 나라로 세계축구의 추세와 다른 팀의 정보에 대해 전혀 무지할 수밖에 없었음. 기껏해야 정보를 얻는 루트가 전 세계에 퍼진 현대중공업 해외지사였던 적도 있었다고 함. (그래서 당시 축구협회 국제부 쪽에는 중공업 해외지사에서 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 하지만 히딩크가 부임하고 그가 가진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해외전지훈련 스케줄링, 평가전 상대 결정, 상대팀에 대한 정보 수집 등이 매우 디테일하게 이루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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