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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1. 25. 00:10300x250

Las meeninas(시녀들) - 디에고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7세기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스페인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서 전 세계적으로도 위대한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태어났으며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서 종교적 주제를 다룬 그림들을 그렸다. 10대 때부터 완벽한 기교를 발휘해 특출 난 천재로 인정받았고 20대 때 스페인 및 포르투갈의 왕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가 되면서 왕과 왕실 가족의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
이 작품은 1656년 완성한 벨라스케스의 만년작이자 대표작으로 펠리페 4세의 마드리드 궁전에 있는 큰 방에서 펠리페 4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마리아나 사이에서 태어난 5살의 마르가리타 왕녀와 그녀를 담당하는 시녀들과 샤프롱, 호위병, 궁정 광대와 개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1985년 전 세계 미술가와 비평가들이 뽑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되었으며,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카소는 무려 44번이나 거듭 모방작을 발표해 이 작품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림 속 이야기가 재해석되면서 화가가 ‘누구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이 이 그림을 더욱더 유명하게 하고 있다. 특히 어느 것이 실재하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의문이 들게 하고,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물의 관계를 모호하게 표현하여 서양화의 대표적인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그림의 중앙에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있지만 그림의 제목에서 보듯 공주의 옆에 있는 두 시녀들이 주인공일 수도 있다. 그림 속 시녀들의 옷차림과 머리모양 등으로 미루어 보면 비교적 높은 계급의 귀족 가문의 귀부인 급으로 보인다. 당시 시녀들은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들과는 달리 수행원이나 보좌관 같은 행정정 업무를 하는 높은 신분의 여성으로 오늘날의 비서와 비슷한 일을 수행했다.
왼쪽 시녀가 건네주는 빨간색 병은 태운 납으로, 17세기 스페인에서는 궁중의 여인들이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기 위해서 납을 태운 후 그 연기를 들이마셨다고 한다. 마르가리타가 자손이 귀한 왕실의 유일한 공주로 태어나서 왕가의 큰 사랑을 받았으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결혼한 뒤 21살에 단명한 이유가 납중독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울 속 이미지로 작게 등장하는 펠리페 4세와 그의 왕비가 그림의 주인공이라는 설도 유력하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 현장에 공주가 시녀들을 데리고 구경하러 온 장면이라는 것이다. 희미한 거울 속에 등장하는 왕과 왕비가 그림에 크게 그려진 인물들을 이 방으로 모이게 만든 왕궁의 최대 권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당시 스페인 왕실에서는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함께 그리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고 하는데,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왕실의 엄격한 규율을 깨는 풍자를 시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림에서 유일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난쟁이 마리아 바르볼라가 왕가의 숨겨진 왕녀라는 설도 있다. 당시 스페인 왕가는 근친혼에 의한 유전자 질환으로 자녀들이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살아남은 아이도 심각한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일례로 펠리페 4세의 막내아들인 카를로스 2세는 정신지체에 척추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적 신체적 결함을 보완시켜 줄 난쟁이를 모욕적이고 희화적으로 초상화에 자주 등장시켰다고 하는데 유독 마리아 바르볼라는 당당하게 정면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또한 펠리페 왕가의 유전적 신체 특징 중 하나인 주걱턱이 난쟁이 시녀에게서 드러나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왼쪽 구석에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이 이 그림의 주인공이라는 설도 있다. 벨라스케스는 공적인 삶 이외에 다른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으며 그의 자상화도 거의 없다. 그런데 유독 이 그림에서는 예외적으로 화가인 그가 그림에 등장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벨라스케스는 평생 귀족이 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천한 궁정 화가의 신분이었던 벨라스케스가 자신을 왕가의 사람들이 그려진 작품 속에 담아내며 스스로를 만족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벨라스케스가 입고 있는 옷에 있는 붉은 십자가 문양은 산티아고 기사단의 문양인데 그림이 처음 그려졌을 때는 그려져 있지 않은 무늬였지만 그림이 완성된 후 3년 후에 추가로 십자가 문양을 그림에 직접 그려 넣었다. 1659년 벨라스케스가 산티아고 기사단에 입단하여 기사 작위를 받고 마침에 귀족이 된 이후였다.
뿐만 아니라 그림의 구도를 보면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스냅사진처럼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몇몇 인물들은 캔버스 밖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다른 몇몇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작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그룹짓고 있는 듯 보이지만 중복되는 삼각형 구도로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안정적인 수직과 수평선은 보는 이의 시선을 방 안으로 끌어들여 마치 방 안에 내가 들어와 있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벨라스케스가 구현한 공간감은 이렇게 관람자를 그림 속 화면으로 끌여들여 등장인물과 동일 선상에 서게 하여 그림을 관람하는 동안 공주를 비롯한 그림 속 인물들이 서 있는 공간이 그림 전체 높이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이렇듯 이 작품은 약 350년 전의 그림이지만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야깃거리가 생겨나면서 살아 있는 그림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 루카 지오다노는 이 작품을 가리켜 '회화의 신학'이라고 표현했으며, 1827년 왕립예술원의 회장인 토머스 로렌스 경은 후임자 데이비드 윌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을 "예술의 진정한 철학"이라고 묘사했다. 최근에는 "회화로서 무엇을 나타낼 수 있는가를 자신감 있고 치밀하게 표현한 벨라스케스의 걸작이며, 이젤을 사용한 회화 방식이 가진 가능성을 가장 철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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