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미국의 금주령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2. 13. 00:10
    300x250

     

    미국 금주령(Prohibition)은 미국 수정 헌법 제18조와 실질적 규제법인 '볼스테드 법(Volstead Act)'에 따라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약 13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술의 제조, 판매, 운송을 헌법으로 금지했던 법을 뜻한다. 20세기 초 미국은 술에 의한 여러 가지 문제가 사회 전반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고, 이런 여러 상황들이 맞물려서 어떻게 보면 매우 극단적인 금주법이 나오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서부 개척 시대에서 퍼진 술집(살롱) 문화가 만연하여 가정 폭력, 재산 탕진, 갱단 범죄 등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또한 서부 개척 시대와 맞물려 알레게니-애팔래치아 산맥 서쪽 지역에서 호밀, 보리, 옥수수 등 곡물이 대규모로 생산되었는데, 이들의 운송비가 비싸서 곡물을 그대로 파는 대신 위스키나 맥주로 가공하여 판매하고 있었고, 이러한 공급 과잉으로 술의 가격이 매우 싸지게 되었다. 또한 식수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물 대신 술을 마시는 문화가 보편적이었으며, 주세가 정부 수익의 상당수를 차지해서 정부가 술 소비를 사실상 권장하거나 방관하다 보니 여러 문제가 나오게 된 것이다.

     

    금주법 발효의 첫 번째 원인은 가정 보호와 여성 운동이다. 19세기 초 미국인의 알코올 섭취량은 현대의 3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다 보니 알코올 중독 남편에 의한 가정폭력, 아동 방치, 임금 탕진으로 인한 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는 기독교와 결합하여 알코올 중독자 남편에 의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의 여성의 사회 운동으로 촉발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성 기독교 금주 연합(WCTU)'과 '캐리 네이션'이라는 급진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한 손에는 손도끼를 다른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술집에 드나드는 남성에게 설교를 하거나 손도끼로 술병을 박살내고 다녔다. 또한 1919년부터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는데, 정치권은 이제 최초로 투표권을 갖게 된 여성들의 표를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침례교나 감리교 등의 기독교 근본주의 개신교 교파들은 음주를 죄악이자 사회악의 근원으로 봤다. '절제 운동(Temperance Movement)'라고 불리는 이들의 운동은 술은 범죄와 빈곤, 가정폭력의 근원인 사회악이자 술이 없는 깨끗한 미국을 만드는 것을 종교적 사명으로 여겼다.

     

    두 번째 원인은 당시 미국인들의 음주가 실제로 사회와 경제, 산업 전반에서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기 때문임. 산업 혁명 이후 공장주들은 술에 취한 노동자들의 잦은 결근과 사고, 낮은 생산성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이 일요일에 술을 진탕 먹는게 당연시되다 보니 월요일은 결근이 일상적일 정도였다고 한다. 사업가들은 노동자들이 맑은 정신으로 일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믿으며 존 D. 록펠러나 헨리 포드 같은 산업 자본가들은 금주 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사회적으로도 당시 금주법은 중산층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는데, 중산층들의 장래에 대한 불안과 사회 하층민의 음주 문화에 대한 불만, 범죄와 빈곤에 대한 반감의 대상이 알코올이 된 것이다. 당시에는 완전한 금주의 실현을 당의 목표로 하는 '금주당'도 있었다고 한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도 컸다. 당시 전쟁 중 맥주나 위스키 제조에 들어가는 보리와 밀 등의 곡물을 군인들의 식량으로 돌려야 한다는 식량 안보 차원의 '애국적 명분'이 크게 설득력을 얻었다. 또한 당시 미국 내 대형 양조장 주인들이 대부분 독일계 이민자들이었고, 미국의 주요 맥주회사들이 거의 다 독일계였는데, 독일과 전쟁 중이었던 미국인에게 독일계 맥주를 마시는 행위는 '적국을 돕는 일'처럼 비쳤다. 이렇게 반독감정이 퍼지면서 맥주 불매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는데 이게 불이 붙어서 '그냥 술이란 술은 다 먹지 말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설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고, 금주법에 대한 지지가 올라간 원인 중 하나로 보는 게 맞다.

     

    하여간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금주법의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실제 금주법이 시행된 1920년대에는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1940년대까지 알코올 소비량은 금주법 이전 수준 이하를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 또한 엄청 심각했다. 술의 유통이 음지로 숨어들며 알 카포네 같은 마피아가 급성장하고 거대 범죄단체로써의 기반을 마련했다., 정부의 세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양조업자는 물론이거니와 농산물을 재배하던 농부들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밀주는 점점 성행했는데 금주법이 시행되자 희소성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고, 더 독하게 마시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정작 금주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상류층은 금주법 이전과 동일하게 몰래 술을 제조해서 마셨고, 하층민들은 술과 유사한 음료를 마시거나 메탄올로 술을 만들어 먹다가 죽어나갔다. '발효가 되면 술이 되므로 절대주의하시오'라는 경고문구가 적힌 포도주스 만들기 밀키트인 '그레이프 브릭(Grape Brick)'이 날개 돋친 듯 팔렸으며 간판도 드러난 입구도 없이 암호를 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스피크이지(Speakeaies)' 술집도 우후죽순 생겼다. 정부의 관리 자체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장 대통령부터 금주법을 안 지켰는데 금주법을 도입한 하딩은 '법 제정 이전에 사 둔 술을 마시는 것'이라며 맨날 백악관에서 술 마시면서 포커를 해댔고, 그다음 대통령인 후버는 미국 법이 적용되지 않는 벨기에 대사관에 가서 술을 퍼마셨다.

     

    정부에서 주세가 줄어든 대신 기업에 높은 세금을 매기게 되면서 기업들도 불만이 쌓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터지자 이에 대응할 재정 여력이 필요했지만 정부의 금고는 비어있었다. 결국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세수 확보를 위해 금주법을 폐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금주법은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규제가 최악의 결과를 낳은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되었다.

    300x25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