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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소의 고환을 사람 몸이 이식했던 돌팔이 의사. 존 R. 브랭클리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5. 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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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R. 브랭클리(1885~1942) 미국의 돌팔이의사, 방송인, 마케터, 정치인. 의사로서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학위 장사업체에서 의학 학위를 사들였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학박사, 이과석사, 법학박사, 공중위생학사, 이학박사라고 주장했다.
     
    염소 고환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통해 유명해졌다. '염소 고환 의사' 라고 알려진 그는 왕성한 짝짓기를 하는 숫염소의 고환을 사람에게 이식해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처음에는 남성 발기부전 치료법으로 홍보했지만 나중에는 다양한 남성 질환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홍보했다. 여러 주에서 치료소와 병원을 운영했는데 기차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1918년 독감 대유행 당시 밀포드의 진료소에서 직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환자들을 열성적으로 치료하며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시작이었다. 밀포드 지역 사람들은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 브랭클리에게 - 이후 그의 사기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 깊은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운 좋게 - 혹은 운 나쁘게도 그의 첫번째 염소 고환 이식 수술이 성공한 것도 한 이유였다. 염소의 고환을 이식받은 남성이 아들을 출산한 것. 이 소식은 여러 신문사들의 관심을 끌어 매스컴을 타게 되었다. 여기서 브랭클리의 기가 막힌 마케팅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브랭클리는 대대적인 우편 광고를 시작했다 광고 대행사를 고용하여 홍보하기 시작했다.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광고와 마케팅 매체로서 힘을 재빠르게 간파해 자체 방송국(KFKB)을 설립했고, 자신의 수술 사례를 극적으로 홍보했다.
     
    "당신은 정력 넘치는 남자인가? 남자들이여! 정력을 잃어버렸는가? 브링클리 박사의 염소 고환 수술은 당신을 한창때로 돌려놓을 것이다!" 라는 광고 멘트는 1차 대전 직후와 대공황 시기 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남은 중장년층이 은퇴를 미루고 계속 생업에 종사하면서 자식을 더 낳아야 했던 시기에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들렸다.
     


    혁신적인 광고와 마케팅의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환자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는 떼돈을 벌었다. 수많은 사회 저명 인사들도 그의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는 1회당 750달러를 받고 수술을 해 주었는데 2025년 기준으로 12,000달러에 해당한다.) 자신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의약품을 판매하여 폭리를 취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당시 미국 의사들의 소득이 7천 달러가 못 미치던 때 그가 번 돈이 1,200만 달러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사기 행각은 꼬리가 밟혔다. 실제 그의 수술은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이식된 염소 조직은 몸속에서 흡수되거나 괴사할 뿐 호르몬을 생성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거부 반응과 비위생적인 수술 환경으로 수많은 환자가 감염과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결국 내과의사이자 미국의학협회저널의 편집장이었던 모리스 피시바인의 집요한 추적으로 브랭클리는 미국 의학 협회(AMA)와 연방 통신 위원회(FCC)의 끈질긴 추적으로 의사 면허와 방송 면허를 박탈당하게 된다. 
     
    의사 면호와 방송 면허를 잃은 브랭클리는 캔자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주지사의 권한으로 의사 면허를 되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라디오 방송국을 선거 운동에 활용했고 전용비행기를 타고 선거 유세에 나섰다. 연설 강연대로 변신하며 자체 발전기를 탑재해서 조명을 밝히고 반경 400m까지 목소리가 전달되는 강력한 확성기를 설치한 최초의 선거 유세 차량을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루스벨트 내각의 전쟁부 장관 출신 해리 하인즈 우드링에게 패배했다.
     


     
    그가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는 선거 등록을 너무 늦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투표용지가 이미 인쇄된 후에 흐보 등록을 했기 때문에 그의 표가 인정받으려면 독립적으로 그의 이름을 정해진 양식대로 철자가 틀리지 않게 투표지에 기명했어야 했다. 투표결과 브랭클리는 자신에게 갔어야 할 약 3만~5만 표가 무효표 처리되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재검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담으로 당선된 우드링 역시 나중에 그 표들이 유효했다면 브랭클리가 승리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선거에서 패배한 그는 멕시코 국경에 접한 델 리오로 근거지를 옮겨서 10여 년간 더 사업을 유지했다. 멕시코에서 방송하는 그의 XERA 방송국의 라디오 전파는 캔자스에서도 여전히 들을 수 있었는데 맑은 날은 캐나다와 알래스카까지 방송될 정도로 출력이 높았다고 한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서 증상을 호소해 오는 환자들에게 우편으로 '처방전'을 판매하기도 했다. 밀포드에 있는 진료소도 자신의 부하들을 통해 계속 운영했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병원을 열었다. 더 이상 염소 고환 이식 수술에 매달리지 않고 일종의 정관수술과 전립선 시술인 "회춘술"을 시행했고 사후관리를 위해 자체 개발한 약을 처방하며 그의 사업은 더욱더 번창했다.
     


     
    1938년 모리스 피시바인은  "현대 의학 사기꾼들(Modern Medical Charlatans)"이라는 제목의 2부작 시리즈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브링클리의 파란만장한 경력을 철저히 부정하고 그의 의심스러운 의학적 자격을 폭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브랭클리는 피시바인에게 명예훼손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지만 기각되었다. 
     
    결국 이 소송을 기점으로 브랭클리에게 당한 의료피해자들이 줄소송을 걸게 되었다. 그 총액은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미 국세청은 그를 세금 사기 혐의로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멕시코에서 그가 연 XERA 방송국도 폐쇄되었다. 미국 우정국에서도 그를 우편 사기 혐의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브랭클리는 세 번의 심장마비와 혈액순환문제로 인해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1942년 무일푼으로 샌안토니오에서 사망했다. 국내에 그의 이야기를 다룬 '돌팔이 의사' 라는 책이 출간되었으며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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