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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귀화한 독립운동가의 후손 허미미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5. 29. 00:10300x250

허미미는 항일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허석 선생은 1918년 군위 일대에 항일 격문을 붙인 죄로 투옥돼 징역형을 살았고, 출옥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 된 인물이다.
허미미는 아버지가 재일 한국-조선인, 어머니가 일본인이라서 선천적 복수국적자였다. 허미미는 일본에서 태어나 중학생 시절 이미 일본 전국대회 금메달을 딸 만큼 촉망받는 선수였지만, 할머니의 “한국 대표로 올림픽 무대에 서 달라”는 마지막 말을 지키기 위해 진로를 틀었다. 할머니는 생전 재일교포 단체인 민단의 도쿄 에도가와 지부 및 부인회 회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이후 허미미는 한국 국적을 택했고, 경북체육회 합류 후 2022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허미미가 허석 선생의 후손이라는걸 찾아낸 건 경북체육회 김정훈 감독이었다. 허미미의 선수 등록을 위해 허미미의 본적지에 방문했다가 군위군 관계자로부터 '허미미가 허석 의사의 후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김 감독은 경북도청, 국가보훈처, 주일 대사관 등을 찾아다니며 조사를 했고 경북도에서도 지원을 해줘서 허미미의 할아버지 허무부가 독립운동가 허석 의사의 증손자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침 허석 선생이 활동하던 곳도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군위군(현 대구광역시 근위군)이었다. 김석현 감독은 "허미미가 큰 용기를 내 한국에 왔는데, 일본 사람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어 이 일에 더 매달렸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허미미를 질투해 '대표팀이 되기 더 편한 한국을 선택한 게 아니냐?'라고 하긴 했는데 허미미는 어려서부터 일본유도계에서 주목을 받던 인재였다.
허미미는 2021년 일본 명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에 입학했다. 2022년 태극마크를 달면서 최근까지 약 3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했다. 주요 대회를 앞두고는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 입촌해 지옥훈련을 받았고, 대회가 끝나면 일본 도쿄로 날아가 대학 강의를 들었다. 결국 2025년 와세다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소속팀인 경북체육회에서도 대학졸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고 한다.
허미미는 2024년 세계유도선수권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29년 만에 금메달(여자 57㎏급)을 목에 걸었다. 이어 2024 파리올림픽에서 은메달(여자 57㎏급)과 동메달(혼성 단체)을 따내며 유도를 넘어 한국 스포츠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어깨 수술로 잠시 주춤했으나 이후 4개 대회를 연속으로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고 올해 3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여 아시안게임과 2026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 출전 티켓을 확보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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