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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9. 27. 23:52300x250
마녀사냥.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벌어진 여성 학살 행위. 중세시대 때 많이 자행되었다고 인식되어 있으나 정작 가장 극심하게 벌어진 시기는 근세였다.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럽에서는 악마와 결탁하여 마법을 행했다는 누명을 덮어 씌우는 마녀사냥을 통해 수만 명의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마녀사냥의 원인에 대해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서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갈등, 자본주의 발흥 및 근대 국가의 탄생과 권력투쟁, 여성에 대한 혐오 등을 주로 꼽으나, 근본적으로 당시 유럽에 만연했던 흑사병, 인구증가와 경제위기,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등이 발생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감과 위기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녀재판을 통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마녀로서 희생양으로 삼게 한 것이다. 한마디로 급격한 사회변동과 위기에 직면했을 때 불안 해소와 기존 질서 유지를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마녀로 몰아서 희생한 것이다. 당시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 모두 마녀재판을 부추기고 여성의 존재적 열등함과 부정함을 강조하는 한편, 인류 타락의 원인 제공자로서 여성을 폄하하며 사회적 약자 중에서 여성들을 겨냥하여 마녀사냥을 주도하였다.
또한 마녀사냥은 어떻게 보면 마녀'사업'이라 불릴 수도 있었다. 마녀사냥은 부정한 재산 축적과 정적 제거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재앙과 자연재해로 인한 피지배층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효과적인 정치 수단이었다. 또한 공포 조장을 통해 사회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개인적 원한이나 경쟁자 제거를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었던 효율적인 제도였다. 실제 돈 많은 부잣집 과부들이나 의사와 성직자의 라이벌 포지션이었던 산파나 약초사 등이 주 타깃이 되었으며, 이들의 재산은 영주, 주교, 이단 심문관 등이 나눠가졌다. 실제 독일의 경우 마녀의 재산을 가져가지 못하게 법이 바뀌었더니 마녀 신고율이 급감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집단 히스테리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지역은 소빙하기로 인한 대기근으로 경제와 식량 사정이 매우 나빴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흑사병과 가축들의 전염병이 창궐하였고 기독교 종파들의 발현과 가톨릭과 교황의 권력 약화, 지방권력의 약화와 30년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피폐가 다발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이런 불행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 대상이 마녀가 된 것이다.
인권 의식이 없던 시절이라 마녀 사냥이 마을의 큰 구경거리이자 오락물이 되기도 했다. 마녀사냥 하는 날은 마치 작은 축제와도 같았다고 한다. 마녀사냥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약 4만~6만 명으로 추산되며, 또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들도 마녀사냥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18세기 말부터 정부와 당시 마녀사냥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대규모 사법개혁을 단행하고 강력하게 규제를 시작하자 마녀사냥은 사라졌으며,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녀사냥을 교회의 잘못으로 인정했다. 이후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사회 안의 불특정 다수가 한 사람 혹은 소수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세게 몰아붙이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마녀사냥의 문제는 그것이 특정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방식이 언제, 어디서든 동일한 방식으로 투사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특히 마녀사냥에 몰리는 사람들의 경우 심각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지만, 마녀사냥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으며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마녀사냥도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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